UX 전문 디자이너가 없는 조직 혹은 전통적인 기획서인 와이어 프레임을 가지고 기획을 하는 회사에서 UX는 기획자의 몫이다. 직전 회사도 그리고 지금 다니는 회사도 내가 직접 와이어 프레임을 그린다. 취업 준비를 할 때는 와이어프레임을 그리는게 나름 재미있었는데 기획서를 쓰면서 점점 커져만 가는 의문이 있다. 와이어프레임을 내가 그리는게 맞는걸까? 나는 디자인을 배워본 적도 없고 UX 전문가도 아닌데 내가 그린 프레임이 고객들에게 전달되어도 되는걸까? 하는 의문이다. 예쁜 디자인을 하는 건 아니지만 화면구성부터 버튼의 종류와 위치까지 결국 기획자가 대부분을 결정한다. 디자인팀은 디자인 비전문가인 기획자가 그린 프레임을 가지고 색을 입히는 일을 한다. 이건 분명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좋은 UX를 만들 수 있을까?
사실 와이어 프레임을 그리는 기획자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한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디자이너 분들도 UX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사용성에 더 관심을 갖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인물인 기획자가 와이어 프레임을 그리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대략적인 화면 구성이 나와야만 기획팀과 개발팀 리뷰가 가능한 것도 한 몫을 하게 된다. 와이어 프레임을 그려야 하는 이유는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한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전문가인 디자이너들의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기획자들이 와이어 프레임 때문에 불필요하게 낭비하는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현재 구조에서 디자이너들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창작자가 아니라 다 그려진 그림에 색칠만 하는 페인터 같은 역할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디자이너들이 원하는 것이 그런 일이라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는 디자이너에게도 그리고 기획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협업을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가장 좋은 것은 스크럼 조직을 꾸려서 PO와 디자이너가 같은 팀에서 일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보통 와이어프레임 작업까지 디자이너가 모두 맡게 된다. 때로는 와이어프레임은 건너뛰고 바로 시안을 제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직 구조나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는 조직장이라도 감히 바꾸기 힘든 일이다. 당연히 주니어들에게는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소프트스킬일 것이다. 가장 현실적이고 쉬운 방법은 기획서 작성 시점부터 디자이너와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와이어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누구와 작업할 것인지가 대략적으로 예측이 된다면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시도이다. 기획 초기 단계에 디자이너분들께 조언을 얻고 싶다고 요청을 드리고 디자인 시안 작업 시 어느 정도의 자유도를 얻고 싶은지 대략적인 의견을 묻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 생각한다. 완성된 와이어 프레임을 원하는 경우에는 기존에 하던 것처럼 기획서를 만들면 될 것이다. 중간중간 의견을 묻는 정도만 되어도 도움이 된다. 만약, 디자이너 분께서 흔쾌히 다양한 의견을 주고 싶다고 하시거나 높은 자유도를 원하신다면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서로의 역량을 최대한 살려 작업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전담 디자이너가 없을 수도 있고 누구와 협업할 지 미리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기획팀장님은 최대한 자세히 그려진 와이어 프레임을 원하실 수도 있다. 그리고 디자이너분들이 내신 아이디어가 사용성 관점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시도는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별로였다면 원래대로 돌아가면 된다. 원래대로 돌아가도 잃는 것은 없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조금이라도 효과를 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한 발자국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공의 발판이 생기면 그 다음에 조직이 따라서 변할 가능성도 높다. 주어진 상황에서 조금 벗어나서 아주 작은 도전과 성공들을 만들어보자.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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