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기획 취업 이야기 시리즈
서비스 기획 취업 이야기(1) - 기획자가 되기로 마음 먹다
자소서에 뭐라도 적으려면 직무 경험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동안 나의 경험은 전략 기획쪽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오프라인 이벤트도 기획을 해본 경험이 있었지만 IT 서비스와는 접점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서비스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획부터 출시까지의 싸이클을 한번 돌면 이해도가 크게 높아질 것 같았다. 결과야 어찌되든 취업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당시에 나는 만들어보고 싶은 앱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독서 기록앱이었다. 나이키 런 클럽의 책 버전을 생각했었다. 내가 오늘 얼마만큼을 읽었는지 기록도 하고 통계도 확인하고 뱃지도 받으며 독서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앱을 만들고 싶었다.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쓰려고 독서 기록용 스프레드 시트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친구들은 잘 쓰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앱에 대한 그림은 개략적으로 머릿 속에 있는 상태였다.
이제 머리 속에 있는 걸 꺼내놓기만 하면 되었다. 본격적으로 기획서를 작성해야 하니 기획서 작성 방법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PPT를 써야 하는지, 엑셀을 써야하는지, 디자인 툴을 써야 하는지 부터 알아보았다. 기획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 기획서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지, 기획서를 얼마나 세세하게 작성해야 하는지도 공부거리였다. 플로우차트, Information Architecture, 기능명세서, 와이어프레임, 디스크립션 등 기획서의 세부 구성요소들에 내가 기획한 서비스의 모습을 하나씩 옮겨 담았다. 처음에는 이게 왜 필요한 지도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베끼는 것에 가까웠다. 조금이라도 있어보이는 기획서를 만들기 위해 IA와 플로우 차트를 넣었던 것이지 그것이 작업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PPT로 엉성하게 나마 기획서를 만들고 나서 몇 번을 다시 다듬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 보면 중학생이 만든 것 같아보이는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완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함을 느꼈다. 기획서가 완성되고 나서는 외주 제작 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아보니 앱을 만들려면 우선 디자인이 필요했다. 디자인도 외주를 맡기면 좋겠지만 디자인까지 외주를 맡기자니 예산 부담이 너무 클 것 같았다. 디자인이라고는 PPT 밖에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지만 그래도 PPT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상태였다. 디자인 툴이야 배우면 되는 것이고 디자인도 PPT 만드는 수준으로는 해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XD가 무료이기도 하고 난이도도 쉬운 듯하여서 XD를 배우면서 동시에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디자인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획서의 첫번째 버전을 완성하는데는 2-3주 정도가 걸렸던 것 같은데 디자인을 끝내는데도 비슷한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마지막 출근을 했던게 8월 말 즈음이었고, 기획서 초안이 나왔던게 9월 중순이나 말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디자인은 10월까지도 작업을 하고 있었다. XD가 PPT랑 비슷한 면이 있어서 배우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개방적이기도 해서 빠르게 습득했다고 생각하는데도 처음 해보는 일이다보니 시행착오가 분명히 있었다. 당장 화면 크기는 얼마로 해야하는지부터 하나씩 검색을 해보아야했다. 그리고 내 기획안에 생각보다 많은 아이콘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걸 만드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군다나 와이어프레임을 그리는 것과 이걸 디자인으로 구현하는데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와이어프레임을 만들 때는 대략 이렇게 디자인이 나오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걸 내가 직접 실체화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레퍼런스를 참고해야만 했다. 디자인은 해본 적이 없으니 정말 막막했다. 모바일 UI가 별로 대단치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빈 화면에 컴포넌트들을 배치해보니 어린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아보였다. 그걸 적당히 봐줄 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열심히 참고할 화면을 찾아보고 그 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서 디자인을 만들어보고 전체적인 구도를 살펴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만드는 과정을 몇 차례 반복했다. 기초를 잡는 것도 어려웠지만 작업해야 할 양도 상당했다. 페이지도 적지 않았고 각 인터랙션에 대해서도 디자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초적인 기능도 모르는 채로 어떻게 작업을 했나 싶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그때만 해도 모니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듀얼모니터라는 걸 써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모니터가 하나 더 있는게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알 지 못했다. 노트북 화면만 가지고 디자인을 했던 것이다. 노트북 발열이 심해서 XD가 멈추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노트북을 재부팅해줘야 했다. 그래도 돌아보면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동네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기도 했고 근처에 있는 남산 도서관에 가서 작업을 했던 적도 많았다. 퇴사 직후였으므로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궁금증도 있었다. 또 동시에 약간의 외로움도 함께였다. 학교에서와는 달리 이제는 완전히 혼자였기에 외로움과도 싸워야했다. 혼자서 그렇게 나의 서비스와 나의 미래를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2023.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