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요소이다. 얼핏 듣기에 디자인과 기억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기억의 속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제품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먼저, 기억의 속성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어서 이를 고려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짚어보자.
인간의 기억은 기본적으로 단기 기억(short-term memory or working memory)과 장기 기억으로 나뉜다. 단기 기억은 작업 기억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우리가 특정 작업을 할 때 필요한 정보만을 짧게 저장하는 특성을 따서 지은 이름이기도 하다. 단기 기억 중 기억할 가치가 있는 일부는 우리 머리 속에 저장되어서 장기 기억으로 바뀐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중 대부분은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여기서 우리는 기억에 관한 첫번째 진실을 기억해야 한다. "삶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일은 잊혀진다." 이는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만약, 제품을 사용할 때 사용자가 무언가를 기억해야만 한다면 그리고 기억해야하는 무언가가 아주 가끔만 필요한 것이라면 문제는 커진다. 사용자는 대부분의 것들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기억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은 나쁜 디자인을 가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밀번호에 너무 많은 제약 조건을 걸어서 특정 사이트만을 위한 비밀번호를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 페이지를 넘겼는데 직전 페이지에 있던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 현재 내가 보고 있는 상품이 어느 카테고리인지 알려주지 않는 경우 등은 모두 기억의 속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생긴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기억할 필요가 없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 집 안에 있는 전등 스위치를 한번 떠올려보자. 거실에 있는 전등을 정확하게 켜거나 끄기 위해서 우리는 몇번이나 시행착오를 겪는가? 우리는 대부분 어느 스위치가 어디에 대응되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가끔은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전등을 하나씩 켜보며 스위치와 전등의 관계를 파악해보곤 한다. 하지만 그 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예전처럼 전등을 하나씩 움직여보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전등의 위치와 스위치의 위치가 동일한 모습으로 배열되어 있다면 어떨까? 왼쪽 등의 스위치는 왼쪽에, 가운데 등의 스위치는 가운데에, 오른쪽 등의 스위치는 오른쪽에 놓이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기억할 필요도 없이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을 필요도 없이 스위치를 껐다가 켤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번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기억은 반드시 머리 속에 저장될 필요는 없다. 세상 놓여진 무언가가 기억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위치의 위치를 기억하지 않고도 정확하게 스위치를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을 방금 찾아냈다. 이는 머리 속에 있어야 했던 기억을 스위치의 배치가 대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무언가를 사용자가 기억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이것을 사용자의 머리 속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저장할 수 있다. 즉, 제품 어딘가에 이를 기록하는 것이다. 결제일을 알림으로 알려주거나, 쇼핑몰에 접속했을 때 직전에 보고 있던 상품을 보여주거나, 배송 정보를 저장하거나, 결제나 저장 등의 버튼을 오른손 엄지가 닿을 수 있는 영역에 둔다거나 하는 방식은 크던 작던 머리 밖에 무언가를 저장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사람에 대한 이해는 더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첩경이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기억하도록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 글은 "디자인과 인간 심리(도널드 노먼 지음)"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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