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비스기획 이야기

서비스 기획자가 되고 실망했던 점들

거인의서재 2023. 5. 5. 21:12

    서비스 기획자는 좋은 직업일까? 기획자라는 진로를 선택했을 때 감수해야만 하는 단점들은 무엇일까? 오늘은 기획자가 마주하는 좌절, 절망 혹은 회의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단점은 현실적인 업무 상황에서 오는 것이기에 기획자라는 직무를 머리 속에 그려보는데 도움이 된다.

 

    생각보다 훨씬 더 디테일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처음에 기획자가 서비스의 방향을 잡고 대략적인 와이어프레임만 제시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화면에 나오는 모든 버튼의 위치와 문구 그리고 버튼을 눌렀을 때의 동작까지도 기획자가 정의를 해줘야만 했다. 만약 고객이 뒤로가기를 누르면 어떻게 되나요? 배송지를 변경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나요? 카드 정보가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하나요? 임시저장은 해주나요? 데이터는 어떤 순서로 노출을 해주나요?와 같은 수많은 세부 사항을 모두 정해야만 한다. 단순히 항목만 많다면 금방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 항목들은 다른 항목들과 엮여있다. 배송지를 변경한다면 이것이 출고시스템에도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출고 상태는 어떤지 몇시까지 변경이 가능한 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출고시스템에는 배송지가 변경되었다는 알림도 필요할 것이다.

 

    UI와 인터랙션에 대한 고민도 만만치 않다. 라디오 버튼과 토글 중에 무엇이 나을까하는 문제가 아니다. 정기결제가 가능하다는 걸 알리는 동시에 새벽배송을 받으려면 현관비밀번호를 반드시 입력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해야 한다. 특정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UI들을 때때로는 백지에서 그려내야 한다. 문제는 이런 고민이 매우 사소한 기능이나 페이지에서도 벌어진다는 점이다. 디테일을 살려야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아지지만 기한이 정해진 업무에서 너무 많은 디테일은 기획자를 괴롭히는 요소이다.

 

    귀찮은 일들도 생각보다 매우 많다. 기획자는 기획서만 쓴다고 생각하지만 기획서 작성 외에도 관리해야 하는 일들이 상당하다.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우선 고객들에게 안내부터 해야 한다. 게시판 공지, 인앱 팝업창, 이메일, 문자, 카카오톡 알림 등 여기에 들어갈 내용을 채우는 건 기획자의 몫이다. 고객들의 문의사항에도 응대해야 한다. 신규 기능 추가를 고객들이 요청한다면 여기에 적절한 답변을 해야한다. 이는 고객센터가 별도로 존재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고객센터 직원분들이 서비스에 대해서 문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기능이 복잡한 서비스라면 고객센터에서도 모든 기능을 파악하기 어렵다. 테스트도 기획자의 몫이다. 신규 기능을 오픈하거나 오류를 수정했을 경우,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신규 오픈이 있을 때는 메뉴얼도 작성해야 한다. 고객용 그리고 내부 직원용으로 2벌이 나가는 경우도 있으니 문서 작업량은 적지 않다.

 

    자유도가 떨어진다고 느끼는 순간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할 지는 대부분 경영진에서 결정한다. 올해 진행할 프로젝트 중 일부는 A가 하고 일부는 B가 하고 하는 식이다. 심한 경우에는 페이지 구성이나 특정 기능에 대해서도 임원이나 팀장의 피드백이 들어온다. 좋게 말하면 피드백이고 그들의 생각이 강요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구현을 하는 과정에서도 생긴다. 사내 개발 시스템의 한계로 도입할 수 없는 기능들도 많다. 또한, 이전에 만들었던 기능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 기획 방향성을 바꿔야 하기도 한다. 좋지 않은 옵션이라는 걸 알면서도 선택해야 하는 때가 분명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이다. 내 눈에는 예뻐보이지 않아도 사내 가이드라는 걸 따르려면 트렌디해보이는 디자인은 포기해야 한다. 이런 모습들은 높은 독립성과 주도성을 기대하고 기획자가 된 사람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는 회사마다 편차가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조금 어두운(?)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기획자가 되고자 한다면 이런 어두운 부분도 한번 상상해보시길 바란다.

 

 

2023.05.0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