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지음)"에 대한 글입니다. 책의 결론이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
- 열역학 제 2법칙, 엔트로피의 법칙 -
세상은 혼돈과 질서의 중간 어딘가에 놓여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동시에 혼돈으로 가득차있다. 격자무늬로 계획된 도시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사람들은 무작위하게 움직인다. 누군가의 무작위적 움직임으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질서를 깨뜨리고 혼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유년기-청소년기-청장년기-노년기를 거치며 정해진 질서를 따라가는 것 같아보여도 매순간 혼돈이 생긴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질병으로, 자연의 움직임으로,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은 겨우 잡아놓은 질서를 뒤흔든다. 우리는 혼돈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어느새 다시 질서를 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들에게 질서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혼돈만 가득한 세상에서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 내일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기에 세상이 예측된 대로 흘러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세상을 이해할 때에도 질서를 적용한다. 질서가 없는 세상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자연에 질서를 하나둘 부여하기 시작했다. 봄-여름-가을-겨울로 시간의 흐름에 질서를 세웠다. 산, 바다, 강, 평지, 동굴 등 공간에도 질서가 생겼다. 질서는 더욱 정교해져서 민족, 종교, 국가로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이런 질서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이 세워둔 질서라는 것은 깨어져서 다시 혼돈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건물, 도로, 도시와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의 질서는 주로 자연의 알 수 없는 힘으로 인해 무너진다. 태풍, 지진, 해일 앞에 질서는 파괴되고 혼돈이 시작된다. 그런데 때로는 무형의 질서들이 붕괴되기도 한다. 인간 사회에서 계급제 그리고 노예제는 확고한 질서였다. 그러나 결국 이들 질서는 무너지고 이제는 새로운 질서가 이들을 대체했다. 무형의 질서는 왜 무너졌을까? 질서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인간의 관념을 통해 부여된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과 바다가 절대적인 기준을 지닌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무엇을 바다라고 부를 수 있는가? 태평양이 바다라면 이것의 절반 크기를 가진 물은 바다인가? 그렇다면 1만분의 1의 크기를 가진 것이라면 바다인가? 소금물이 있다면 바다인것인가? 그렇다면 우리 집 바가지에 떠놓은 물도 바다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산에도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이 부여한 질서는 진실보다는 편의를 위한 것에 가까운 경우들이 많다. 계급제와 노예제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노예라고 부를 것인가? 노예와 노예가 아닌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노예와 노예가 아닌 자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노예인가?와 같은 진실을 꿰뚫는 질문들에 직면하면 인간이 부여한 관념들은 깨져나간다. 이들은 진실에 기반한 질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세상을 이해하고 계획하기 위해 질서를 사용하지만 질서로 인해 자신들을 가두기도 한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질서 속에 들어올 수 없는 것들을 우겨넣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질서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파괴당한다. 유대인 학살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간이 세운 거짓 질서가 세상의 진짜 질서를 무너뜨리는 상황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세운 질서들이 사실은 진실과 거리가 먼 무언가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생학의 질서와 같은 혼돈이 언제든 우리의 질서를 덮칠 수도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질서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법이라는 것이, 국가라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이 세상의 진실된 무엇일까?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질서를 깨뜨리는 것은 두려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혼돈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끌어가기에 혼돈을 기피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그러나 혼돈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열역학 제 2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 질서가 깨어지는 순간 혼돈이 시작된다. 물 속에 떨어질 잉크방울이 물 속에 조금씩 퍼져나가듯이 말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혼돈은 커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번 퍼진 잉크 방울을 다시 모을 수 없듯이 혼돈을 원래의 질서로 돌려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가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엔트로피가 끝까지 증가한다면 어떻게 될까? 잉크방울은 물 속에서 퍼지고 퍼지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퍼지지 않게 된다. 물 속에 입자로 완전히 균일하게 펼쳐졌기 때문이다. 혼돈이 끝나고 또 다른 질서가 생긴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형태이지만 이 역시도 하나의 질서다. 세상의 질서와 혼돈도 마찬가지이다. 질서 속에 잉크방울처럼 혼돈이 들어온다. 그리고 혼돈이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은 경악한다. 그러나 이윽고 혼돈이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면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새로운 질서로 인정한다. 지구가 태양주위를 돈다는 사실은 한때 질서가 아니라 혼돈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혼돈을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혼돈은 질서의 또 다른 모습이다. 혼돈은 시간이 지나면 질서가 된다. 그리고 질서는 이윽고 혼돈을 맞이한다. 질서 속에서는 단 하나의 다른 움직임도 혼돈이 된다.있다. 혼돈이 곧 질서이고 질서가 곧 혼돈인 것이다.
우리는 혼돈을 받아들여야 한다. 혼돈이 곧 가져올 질서를 의식하면서 말이다. 우리 삶에는 언제나 혼돈이 가득하다. 크나큰 상실로 혼돈이 생겼다면 상실을 되돌리려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이다. 이는 엔트로피를 역행시키는 것과 같다. 떨어진 잉크방울은 주워담을 수 없다. 차라리 혼돈을 인정하고 엔트로피를 더 빠르게 증가시키는데 집중하는 것이 낫다. 잉크가 떨어진 물을 휘젓는다면 입자는 더 빠르게 퍼지고 잉크를 빠뜨린 물은 더 빠르게 질서를 찾는다. 그러니 혼돈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이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둔 질서에 감히 도전하자.
202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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