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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의 합리성

거인의서재 2022. 11. 22. 22:03

    오늘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휴대폰 구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분은 핸드폰을 천원에 샀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20만원에 샀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처음 3개월은 10만원짜리 요금제를 써야하고 그 다음부터는 5만원짜리 요금제로 바꾸는 식이었다. 물론, 핸드폰 요금 구조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편의상 00만원에 구입했다고 말씀하셨을 수는 있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정말로 핸드폰이 00만원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될까?

 

    군대에서도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은행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경험해보지 못했을 유형의 사람들을 많이 접하는 기회였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나에게는 충분했었다. 다만, 어렸을 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잘 느끼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그런 경험을 해보니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그때는 상류층이라고 느껴지는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었다. 어찌되었든 세상에는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일시불로 내는 금액이 작다고 해서 단말기값이 저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이런 사고방식을 '제한된 합리성' 혹은 '70%의 합리성'이라 부르고 싶다. 구매를 하는 본인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더 합리적이었다면 구매를 하지 않았을텐데 합리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구매를 했으니 붙인 이름이다. 핸드폰 요금의 사례로 다시 돌아가보자. 냉정하게 따져보면 어떻게 구매를 하든 단말기요금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단말기에는 정해진 원가가 있을 것이며, 제조사에서는 최초에 부여한 가격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려 할 것이다. 통신사에서도 얻으려고 하는 수익이 있을 것이며, 요금제별로 원가 혹은 최저가격을 설정해두었을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플래그십 모델에서 공짜 핸드폰은 존재할 수가 없다고 본다. 휴대폰의 기기값을 통신사나 대리점에서 전액 지원을 해줘야만 가능한 상황인데, 100만원이 넘는 단말기값을 전액 지원하는 것이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3년 약정에 10만원짜리 요금제를 쓴다하더라도 전체 매출의 30%를 지원해야 공짜폰을 만들 수 있다. 만약, 통신사와 대리점에서 정말로 공짜폰을 판매할 수 있다면 이는 월 납부 요금 터무니없이 높여서 마진율을 크게 가져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결국 단말기값을 제조사에 직접내느냐 혹은 통신사에 통신비로 지불하느냐의 차이 밖에는 없다. 소비자는 단말기값이 포함된 통신비를 내면서 사실상 단말기값을 정가대로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의 분석이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고, 내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분석이 틀렸다 하더라도 완전한 합리성이 없으면 결국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게 된다.

 

    '제한된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단순히, 사람들은 합리성이 부족하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합리성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즉, 본인 스스로 합리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그것이 객관적으로 합리적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소비행위는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제한된 합리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나는 합리적인 소비자야'라고 소비자들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판매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포인트인 것이다. 만약, 그들이 합리적인 것을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제한된 합리성을 발휘한다면 내가 합리적으로 물건을 판매하고 있어도 매출을 하나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나는 정의로운 소비자야', '나는 나라를 위하는 소비자야', '나는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소비자야'와 같은 합리성이 반드시 소비자의 머리 속에 그려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합리성은 완전한 합리성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90%의 소비자들은 100%의 합리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는 단순히 그들이 논리적이 못해서가 아니다. 논리적이지 못한 소비자들도 존재하지만 제한된 정보나 시간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판매자들이 인위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장치를 넣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발휘하는 합리성은 언제나 70%이다.

 

    핸드폰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제한된 합리성을 이용하는 것이 진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70%의 합리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이성으로만 이루어져있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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