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결과, 문학소설을 읽는 사람이 통속소설이나 논픽션을 읽는 사람에 비해 타인의 감정을 더욱 잘 파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다 보면 신경화학적 변화가 찾아와 환각, 우울, 자살 충동, 폭력적 행동, 심지어 정신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고립을 흡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심장마비와 사망의 위험요인이기도 하다."
"일련의 연구들은 대학생들의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을 보여준다. 이들은 남의 입장이 되어본다든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려 애쓰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는 겨우가 과거 대학생들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이들이 문학소설을 덜 읽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기가 사람들과 교류한다고 착각하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 "정리하는 뇌" 중에서 -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 다른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을까. 카카오톡, 페이스북 그리고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진 우리들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소통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많아진 소통은 우리에게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정리하는 뇌에 나온 연구결과들을 보면, SNS로 인해 늘어난 소통이 우리에게 그다지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나 깊이 있는 소통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왜 우리는 깊이 있는 소통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SNS 소통의 특징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전에 먼저, SNS 소통을 무엇과 비교할 지를 정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대면소통과의 비교를 해보려 한다. SNS의 경우 DM, 단체채팅 그리고 포스팅이 각각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명확하게 구분하지는 않고 뭉뚱그려서 이야기해보겠다.
첫째, 다수를 상대로 소통한다. 대면소통의 경우, 한번에 대화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원은 4~5명 이하일 것이다. 10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반면, SNS에서는 이러한 1 대 다수의 소통이 기본적인 특징이다. 보는 눈이 많아지기 때문에 내면보다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들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 소수의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말할 때는 꾸밈없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다. 그러나 나를 대중들에게 드러내는 상황에서는 나의 비밀들을 쉽사리 꺼내놓기 어렵다.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그리고 보여줄 만한 것들만 겉으로 내놓는 것이다. 이는 소통에서의 진실성을 떨어뜨린다.
둘째,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SNS에서는 대면소통과 달리 글을 읽고 나서 이에 대한 답변을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다. 사람과 직접 만나 이야기할 때는 즉각적으로 말을 해야하기에 이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는 비대면 소통이 주는 큰 장점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나를 숨기는데 적합한 도구로 사용될 여지가 있다. 나를 드러내기 꺼려지는 상황이라면, 답변을 고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얼마든지 나의 가면을 만들 수 있다. 진짜 '나'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내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할 것이다.
셋째, 대화에 활용할 수 있는 단서가 적다. 대면소통에서는 상대방의 표정, 몸짓, 말의 높낮이와 빠르기 등 다양한 비언어적인 단서들을 통해 상대의 감정이나 생각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러나 비대면 소통에서는 이러한 기회가 전혀 없어지게 된다. 오로지 언어적인 요소들과 몇몇 이모티콘 정도를 기반으로 상대의 생각을 추측해야만 한다. 그러다보니, 오해의 소지가 높아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수단들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마지막으로, 극단적인 축약이 많다. 우리는 터치 몇번으로 좋아요, 하트 등을 상대방에게 보냄으로서 대화를 대신하는 경우가 엄청나다. 우리가 누르는 하트에는 수많은 제각기 다른 생각과 감정이 담겨있지만, 이를 알 방법은 없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하트의 개수와 이를 누가 눌렀는가 하는 점 뿐이다. 또한, 내가 순간적으로 느끼는 여러 감정 마저도 하트로 대체되어 버린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축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나의 감정을 느끼고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마저도 일부분 축약되어 버릴 지도 모른다.
202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