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 간 기획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코로나로 인해 일시적인 체력 저하와 집중력 저하가 있기도 했지만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기획안을 쓰면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 것이다. 기획이라는 것은 결국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인데 문제를 정확히 정의내리지 못하다보니 무엇을 고민해야할 지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덕분에 집중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웠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 특히나 서비스 기획서를 쓸 때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첫째는 고객에게 이 기능이 왜 필요한지 고민하는 일이다. 크던 작던 어떤 기능을 추가하는데에는 모두 이유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쇼핑몰 리뷰에 좋아요를 누를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한다고 생각해보자. 왜 좋아요를 눌러야할까? 아마도 사람들이 구매를 할 때 도움이 되는 리뷰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일 것이다. 또한, 좋아요라는 보상을 통해 리뷰를 쓰는 사람들이 조금 더 정성들여 리뷰를 작성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2가지 목적을 생각한다면 리뷰의 좋아요 버튼이 상당히 눈에 띄는 위치에 있어야 하며, 좋아요가 많은 리뷰가 상단에 배치되도록 하는 정책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리뷰어들이 받은 좋아요 수를 기준으로 랭킹을 매기거나 뱃지를 주는 등의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넣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실제로 VIP혜택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를 통해 좋아요가 리뷰의 질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처럼 목적을 생각하면 조금 더 쉽게 해결책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고객들의 니즈를 충분히 파악하였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기존 정책과의 충돌을 언제나 고려해야 한다. 우리 회사에서 댓글을 공유, 스크랩, 신고할 수 있는 기능을 이미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댓글에는 이미 3개의 버튼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트볼 버튼 안에 3가지 버튼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좋아요 버튼을 추가로 넣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너무 많은 버튼은 사용성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이때는 버튼을 줄이기 위해서 미트볼 버튼을 추가하거나, 싫어요 기능을 제거하거나 하는 식의 정책을 함께 고려해볼 수 있다. 공유나 스크랩 기능은 잘 사용하지 않아서 버튼을 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이미 들어간 기능을 제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해당 기능을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들이 있을 수도 있고 마케팅이나 영업부서 등의 필요에 의해서 추가된 기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플레이스토어나 앱스토어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리뷰 신고하기와 같은 기능을 추가하도록 강제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제약조건을 잘 파악해야 문제를 제대로 고민할 수 있다.
마지막은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 혹은 정체성이다. 사용자가 원한다고 하더라도 회사 혹은 서비스가 추구하는 목적에서 벗어나는 기능이라면 과감히 배제하여야 한다. 유저들의 실시간 소통과 즉각적인 반응을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회사라면 리뷰에 좋아요 기능을 넣더라도 세부 정책은 달라질 수 있다. 서비스의 정체성이 실시간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좋아요가 높다고 해서 먼저 노출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경우에는 등록 순서에 따라 리뷰가 노출되도록 정책을 잡아야 한다. 좋아요가 단순히 실시간적인 소통을 목적으로 생긴 것이라면 리뷰 작성자에게 VIP 혜택을 주는 정책도 그리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보다는 최근 0시간 내에 최다 좋아요를 획득한 리뷰를 상단에 띄우거나 몇시간 동안만 아이디에 뱃지를 달아주는 등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쿠팡이나 11번가가 아니라 아프리카TV가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 것이다.
기획은 이처럼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어렵고 재미있는 분야이다. 쉬운 주제임에도 이번 기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이런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일은 조금 더 폭넓은 사고를 통해서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해보려고 한다. 한 단계씩 해나가면 못할 것은 없다.
2022.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