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허점 투성이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후회할 걸 알면서도 술을 들이킨다. 늘어난 몸무게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걸 알면서도 초콜릿을 입에 가져다댄다. 과제 제출 기한이 얼마남지 않은 걸 알면서도 유튜브를 본다. 왜 우리는 이런 행동을 하는걸까? 인간은 오랜 진화를 거쳐서 생긴 수많은 생물 중 하나이다. 진화라는 것은 완벽한 설계도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을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의 몸에도 마음에도 많은 허점이 존재한다.
확증 편향, 동기에 의한 추론, 미래의 가치를 실제보다 평가절하하는 것, 불확실한 기억력, 닻 내림 효과 같은 것들은 모두 생각이 가지고 있는 결함의 사례이다. 인지적 오류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설명이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대신에 우리의 인지적 결함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허점 보완하기
'누군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클루지(게리 마커스 지음)"에서는 '누군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는 조언을 준다. 책의 본문을 조금 살펴보자. "실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대답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덜 편향된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결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해명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인지적 노력을 기울이며, 따라서 관련 정보들을 더 자세히 분석하고, 더 세련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책에는 이것 말고도 10가지 정도의 조언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만 적용할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이 조언을 고를 것이다. 아직 잘하고 있지 못한 것 중에서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상상이 혹은 실제로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이 왜 도움이 될까? 이는 혼자 생각했을 때 생기는 생각의 맹점을 타인이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 타인이 질문을 한다면 우리는 대답을 하기 위해서 근거들을 생각하게 된다. 만약, 이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들어오게 되면 나의 사고는 그만큼 확장된다. 그러면서 논리의 허점이나 빈약한 근거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보고 있다 혹은 누군가와 나의 결정에 대해서 토론을 한다고 상상을 하면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가상의 인물이 나의 선택을 평가한다고 생각해보자. 가상 인물이 질문을 던지면 내가 여기에 대해서 답변한다. 이 과정을 계속 거치면 결정의 합리성은 점점 높아진다.
이는 타인을 가르칠 때 학습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타인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대해서 그만큼 깊이 있는 이해를 해야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학습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의사결정 과정을 하나의 학습이라고 본다면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상상이 왜 더 좋은 의사결정을 불러오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의사결정을 내린 과정을 누군가에게 알려준다고 생각해보자. 그 과정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무엇이 있었으며, 하나의 선택지가 다른 선택지보다 더 나은 이유는 무엇이며, 무엇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등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고서는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실천 방법
그렇다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기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방법 중 하나는 가상 친구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 지켜본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고 납득해야 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서 이 인물에게 내 선택의 이유를 설명해보자. 가상 인물은 나와 실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유튜브나 책에서 만난 사람일 수도 있다. 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고 나의 분신일 수도 있다. 상상 친구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대화를 하는 단계다. 어린 아이들이 역할극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
하지만 상상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머리 속으로 질문과 답변을 동시에 떠올려야 한다. 그러는 동안 대화와 관련없는 주제들도 동시에 머릿 속에 들어온다. 실제 대화가 아니다보니 몰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직접 소리 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답변을 하는 것이 이상해보일 수 있지만, 혼자만 있는 공간이라면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소리내어 가상의 인물과 이야기하는 일이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조용히 생각만으로도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집중을 한다고 해도 질문을 하는 사람과 답변을 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점도 걸림돌이 된다. 예를 들어, 너는 이게 정말로 맞다고 생각해? 라는 질문을 던지면 질문을 받기 전과 후의 생각에 큰 차이가 없다. 내가 이미 어떤 결론을 내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질문을 만들어서 그동안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A라는 기업으로 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왜 A가 더 좋다고 생각해?, 왜 A로 가야해?, 왜 이직을 해야 해?, 왜 지금 회사에 머물면 안돼?, A말고 다른 회사는 없어?, 지금 이직을 해야 해?, 이직을 했을 때 잃는 건 뭐야?, 지금 A로 가는게 너의 목표와 어떤 관련이 있어? 등등 이렇게 결정이나 생각의 근원을 살피거나 혹은 생각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질문들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만들어야 상상 친구와의 대화가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친구들에게는 조언을 잘 해주면서도 정작 스스로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하는 조언은 상상 친구 '동수'에게 부탁해보자.
2024.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