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논의를 하다보면 논리는 사라지고, 언성만 높였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남지 않고 감정적인 상처만 남는다. 상처는 생겼으나 논의에는 전혀 진전이 없다. 참으로 소모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일에 휩싸이게 되는 것일까?
첫번째는 논점을 잃기 때문이다. 논의를 할 때는 서로의 의견이 존재한다. 상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가 교육의 기회 확대를 위해 학생들을 위한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는데, B가 학생 복지 대상에 노인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는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면 이는 논점이 맞다고 보기 어렵다. A는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와 그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B는 지금 A가 제시한 방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행상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만약, 복지의 필요성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었다면 실행 방안에 대한 이야기는 불필요할 수 있다. 이는 실행을 결정하고 난 뒤, 실행 단계에서 논의를 할 사항이다. B가 제시할 수 있는 조금 더 적합한 반박은 학생 복지보다는 중증 환자들을 위한 복지가 조금 우선순위가 높다고 이야기 하거나, 교육 기회의 확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정책을 써야한다는 식이 될 것이다. 양쪽이 모두 논점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할 줄 안다면, 논의는 수준이 높게 진행될 수 있으나 만약 양쪽이 모두 논점을 파악할 줄 모른다면 둘은 자신들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열변을 토하게 된다.
두번째는 상대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이다. 나는 틀릴 수 있고, 너의 말도 일리가 있다라는 태도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만약, 상대를 공격하는 식으로 논의를 한다면 상대도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을 부정하거나 공격하는 말에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다. 공격을 받으면 이에 대해서 거부 반응을 보이며, 동시에 반격을 하게 된다. 이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발전시켜온 본성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를 찌르는 행동을 하면 설령 나의 의견이 옳더라도 상대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없다.
세번째는 논의를 하며 흥분을 하는 경우다. 이성적인 말하기를 위해서는 차분한 태도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때때로 상대의 공격적인 태도에 의해서 혹은 말하는 것이 신이 나서 등의 이유로 흥분을 하는 일이 생긴다. 흥분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상대의 말을 집중해서 듣기가 어려워지고, 듣고 난 뒤에도 이를 이성적으로 재빨리 분석하고 판단하는 일에 지장이 생긴다. 이성적이 감각이 살아있어야,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논점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적합한 반론을 내놓을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의 평온을 지켜야 한다. 설령 내가 공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에 동요하지 않고 고요한 감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 스스로가 논의를 잘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구와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논의의 질과 양상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스스로의 모습을 지킬 수 있어야, 어떤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좋은 논의를 할 수 있다. 논의라는 것은 결국 상대방과 하는 것이기에 상대에게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도 고민해야 한다.
202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