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지 8개월 정도가 되었다. 원래도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마저도 마시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모임이나 회식이 있을 때 조금씩은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왠만하면 조금이라도 마시지 않는다.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얻을 때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세운 원칙 중 하나다. 마시더라도 소주잔 1잔 이하 분량으로 맛보기만 할 생각이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걸 주변 사람들도 자연히 알게 되었다. 가끔은 왜 술을 마시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한다. 사실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는 조금 민망한 이유들이라 취한 기분이 싫다거나 아니면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는 이유들을 대고는 한다. 오늘은 글을 빌려서 내가 진짜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를 말하고 싶다. 그동안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기에 여기에 대신 남겨서 나의 작은 욕망을 풀어본다.
첫번째는 낭비하지 않기 위함이다. 대학교 1,2학년 시절에는 술을 꽤나 많이 마셨었다. 술 한잔에 취해서 감상에 젖는 것도 좋아했고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던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마시는 것만큼 나의 자원을 낭비하게 하는 일이 있을까? 술을 마시게 되면 우선 금전적 지출이 생긴다. 밥만 먹을 때와 비교해보면 몇 배는 큰 지출이 생긴다. 술값도 들어가고 안주값도 들어간다. 2차, 3차까지 가면 하루 밤에 몇 만원이 금새 사리진다. 돈만 사라지면 다행이겠지만 돈보다 훨씬 귀중한 시간이 함께 사라지는 것이 문제이다. 술을 마시면 술을 마시는 시간 뿐만 아니라 술을 깨는 시간까지 낭비해야 한다. 나는 3시간을 술을 마시면 술을 깨는데 드는 시간까지 합쳐서 최소 6시간은 낭비하게 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건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나를 소진시키는 행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불어 건강에도 좋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는 예전만큼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 가끔씩 과음을 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비하면 훨씬 적은 빈도로 마셨다.
두번째는 내 삶을 온전히 즐기기 위함이다. 나는 지금 나의 삶이 좋다. 그리고 행복함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술에 의존할 이유가 없다. 술을 마시게 되면 나의 행복을 있는 그대로 100%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술이라는 거름망에 나의 감정과 나의 인식이 걸러지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있는데 공연히 술을 마셔서 흥을 깨고 싶지 않다. 그리고 행여 나의 삶이 불행과 고통 속에 놓여 있더라도 나는 그때의 감정과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 고통조차도 나의 삶이기에 나는 이것이 조금이라도 왜곡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만약, 외로움이나 괴로움과 같은 감정을 술이라는 거름망에 걸러버린다면 나는 이런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더 큰 감정들이 찾아왔을 때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닥치게 되면 결국 다시 술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술에 나의 삶을 내던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을 하는 건 조금 부담스럽다. 누군가는 술을 즐기는데 내가 그것을 낭비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삶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는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아직은 무언가 말하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삶에 대한 얕은 깨달음을 사람들 앞에서 대단한 깨달음인 양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말하기 어려운 이유들이다. 글로라도 이야기를 하고 나니 조금 시원한 기분이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계속 술을 멀리할 생각이다. 언젠가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022.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