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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당첨지는 빼

거인의서재 2023. 1. 8. 20:08

    "1등 당첨지는 빼."

    "네?"

 

    우리팀은 고객 이벤트를 준비중이었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팀장님의 말에 팀원들의 눈빛은 흔들렸다. 경품 이벤트인데 1등 당첨지를 빼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1등 경품으로 에어팟을 내걸고 이벤트 홍보를 했는데, 1등 당첨지는 없었다. '이것이 비즈니스의 냉혹함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때는 바야흐로 나의 대학시절. 아직 재학 중이던 시절, 나는 시리즈 A 규모의 작은 스타트업에서 내 생애 첫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면접을 보고 운좋게도 합격이 되어 인턴으로 출근을 했다. 이곳은 나의 첫 회사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 하나가 바로 경품 이벤트 사건이다.

 

    스타트업은 직무 구분이 무의미한 관계로 페이드 마케팅 기획, 컨텐츠 제작, 고객 이벤트 준비, CS, 바이럴 마케팅, 신제품 출시까지 정말 다양한 업무들을 조금씩 경험해볼 수 있었다. 이번에 주어진 프로젝트는 팝업스토어였다. 팝업스토어에서 신제품을 홍보 및 판매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그리고 경품 이벤트는 팝업스토어를 홍보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구매 고객에게 경품 추첨권을 지급하고 팝업스토어 종료일에 추첨을 통해 당첨자를 발표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1등 상품으로는 에어팟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팝업스토어는 인턴기간 막바지에 했던 프로젝트다. 회사에 다닌 기간은 짧았지만, 우리 회사에 신뢰와 도덕성이 없다는 것쯤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팝업스토어 회의 날이었다. PM분이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하셨고 경품이벤트 대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팀장께서 갑자기 아이디어를 제시하셨다.

 

    "에어팟은 사지마."

    "네? 1등 경품이 에어팟인데요?"

    "1등 당첨지도 빼면 되잖아."

    "아..."

 

정말 참신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홍보 효과는 극대화하고 비용은 최소화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회사를 향한 팀장님의 헌신에 감동이 벅차오를 지경이었다. 우리 회사가 어떤 곳인지는 잘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원래 회사는 다 이런건가.

 

    잊을 수 없는 회의가 끝난 후, 팀장님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준비되어 있어야 했던 에어팟은 경품 추첨 장소에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1등 당첨지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팝업 스토어는 무탈하게 마무리되었다. 프로젝트를 마치면서, 나의 머리 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이곳에서 고객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2023.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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