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망하게 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
"사내에서 가장 똑똑한 20대 젊은 인재를 찾아라. 어느 부서에 근무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에게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게 만들어라."
- 피터 디아만디스- '타이탄의 도구들' 중에서
피터 디아만디스는 혁신의 아이콘이다. 그는 민간인 우주비행 서비스 제공을 목표하는 기업인 엑스프라이즈 재단의 설립자이며, 소행성 광물 채굴 및 탐사를 위한 우주선을 설계하는 기업 플래니터리 리소스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혁신적인 생각을 하는 그가 젊은 CEO들을 위해서 위와 같은 조언을 건냈다고 한다. 그는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을 CEO들에게 건낸걸까?
망하게 하는 법을 알면, 성공하게 하는 법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한 답은 이것이었다. 물론, 피터 디아만디스의 의도와는 다를 지도 모른다. 그는 아마도 회사를 망하게 하는 정신나간 아이디어를 참고해 회사를 혁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끌어내보자는 의도로 한 말일 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전 직원이 다같이 해외여행을 간다', '신입사원과 사장이 서로 역할을 바꾼다' 같이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아이디어로 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정말로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회사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짜로 회사를 망하게 하는 법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가장 똑똑한 20대 직원에게 질문을 던지라고 했으니, 내가 그 질문을 우리 회사의 사장님께 받는 상상을 했다. 물론, 내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해서 상상을 한 건 아니다. 어쨌든 회사를 빠르게 망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회사는 어떤 곳일까.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서 고객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이익을 벌어들이는 조직이다. 고객이 사지 않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러면 회사를 망하게 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아무도 사지 않을 상품을 만들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우리 회사를 망가뜨려보겠다.
첫째, 콜센터에 투입되는 비용을 대폭 축소한다. 지금부터 우리 회사를 A사라고 부르겠다. A사는 사내에서 콜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서비스 사용법을 문의하는 고객들에게 대응하고 VOC를 수집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VOC는 서비스 품질을 향상하는 밑바탕이 된다. 그래서 앞으로는 콜센터 직원들을 다른 곳으로 배치하거나, 신규 인력 투입을 줄일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콜센터 운영시간이 줄어들거나 VOC 기록에 투입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고객과의 접점은 점점 줄고, 고객 불만이 빠르게 쌓여갈 것이다. 기존 고객들은 이탈하고 좋지 않은 입소문이 고객들 사이에서 퍼진다. 회사 매출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두번째, 서비스를 만드는 핵심부서들의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A사는 크게 3가지 사업부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 부문별로 기획자와 개발자가 한 팀을 이루어 업무를 하고 있다. 배달의 민족 서비스를 예로 들면, 배민1 서비스팀에 기획자와 개발자가 함께 있고 배민마트 서비스팀에 또다른 기획자와 개발자가 팀을 이루고 함께 일한다. 자리도 바로 옆에 배치되어 있어 언제든지 기획팀과 개발팀이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앞으로는 서비스와 관계없이 모든 기획자는 한 팀이 되어 일한다. 개발자들은 개발자들끼리만 모여서 팀을 만든다. 가능하다면 층도 서로 분리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하면 의사소통을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다. 기획팀 개발팀의 의사소통이 줄면, 비효율이 올라간다. 문서로만 소통하는 경향성이 커지고 이 과정에서 기획의도가 흐려지는 빈도가 커진다. 인사평가를 위한 KPI를 만들 때, 기획팀과 개발팀이 서로 상충되는 방향으로 지표를 설정하면 금상첨화다. 인사평가는 별도로 이야기하겠다. 기획과 개발의 속도가 줄어드는 효과 뿐만 아니라 서비스에 오류가 늘어나는 빈도까지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세번째, 결재라인은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사업이라도 모두 최고 책임자의 승인을 얻은 다음에 진행하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결재자들에게 명확한 책임을 묻는 문화까지 더해진다면 더욱 좋다. 팀장이나 팀원들이 전결할 수 있는 항목을 줄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직원들이 스스로 판단하지 않게 되고 기계적으로 결재를 위한 보고서를 만든다. 결재자들은 기획안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평가하게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 보다는 안전한 아이디어를 선호하게 된다. 큰 가능성보다는 작은 리스크를 좇는 것이 회사의 문화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지 않는다.
네번째, 동기부여를 떨어뜨리거나 부서 간 불화를 일으키는 평가 및 보상 정책을 펼쳐야 한다. 먼저, 전사 목표와는 관련없는 KPI를 만들어야 한다. 매출, 신규고객 수, 전환율 등의 지표는 KPI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기획팀은 얼마나 많은 기능이나 서비스를 런칭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를 하고, 개발팀은 오류가 얼마나 적게 났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각 팀은 회사 매출과는 관계없이 인사평가를 잘 받기 위한 일만을 열심히 해올 것이다. 게다가 지금 기획팀과 개발팀의 성과지표는 서로 상충되어 있다. 기획팀이 성과를 잘 받기 위해서는 개발팀이 더 많은 기능을 만들어야 되는데, 더 많은 기능을 만들다보면 오류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기획팀이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개발팀이 희생되야 하고 개발팀이 고과를 잘 받으려면 기획팀이 인사평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KPI를 짰다면, 두팀이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팀 간의 불화만큼이나 회사 분위기를 빠르게 흐리는 것은 없다. 직원들의 사기는 특별히 더 노력하지 않아도 금방 떨어진다.
더 생각나는 아이디어들이 많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회사를 망친 것 같아서 여기에서 멈추려고 한다. 내가 생각한 네가지만 적용하더라도 A사는 업계에서 금방 종적을 감추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회사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금방 망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를 지탱하는 기둥은 이것말고도 많기 때문이다. 회사는 망치는 방법이라는 자극적이고 참신한 주제여서 글을 쓰는 동안 정말 재미있었다. 이렇게 회사를 망치는 방법을 생각하고 나니,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가 반대로 떠오른다. 다음번에는 오늘 미처 다 적지 못한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조금 더 참신하고 빠르게 회사를 망쳐보겠다.
2022.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