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 헤어진 진짜 이유
한반도가 둘로 갈라진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은 '지정학의 힘'(김동기 지음)에 소개된 지정학적인 요인들을 바탕으로 한반도 분단의 이유를 살펴보려고 한다.
1945년 광복과 1950년 한국전쟁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광복을 맞는다. 당시 한반도에는 이미 소련 군이 진입해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군도 상륙한다. 자연스레 북에는 소련이 남에는 미국이 주둔하는 형국이 된다. 그해 12월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는 미소가 한반도를 5년 간 신탁통치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이 작성된다. 이후, 미국과 소련 그리고 국내 좌익과 우익 단체는 신탁통치, 정치체제, 정부 수립 등을 놓고 갈등을 벌인다. 갈등을 끝내 봉합되지 못하였고, 1948년 남한에서 단독으로 총선거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38선은 굳어지게 된다. 그리고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분단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얼핏보면, 운이 없어서 분단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국내 좌익과 우익의 갈등으로 분단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원인은 존재한다.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 주둔했고 이후 신탁 통치를 이어가려고 했다는 점이다. 만약, 양국이 한반도를 반으로 나누지 않았다면 분단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소련과 미국은 왜 한반도에 들어왔을까? 정말 우연히도 두 세력이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에 주둔하게 된 것일까? 혹시 한반도 주둔은 의도된 전략적 행동은 아니었을까?
지정학의 힘
한반도가 갈라진 이유는 당시 강대국들에게 영향을 강하게 미쳤던 지정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정학은 지리적인 환경이 국가의 정치, 경제, 외교 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학문이다. 영어로는 Geopolitics라고 하며, 지리학과 정치학을 합한 말이다.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하면 지정학은 어느 위치에 놓인 국가가 강대국이 될 가능성이 높은지, 어느 지역을 차지해야 상대 국가를 견제할 수 있는지, 어느 나라와 친분을 쌓아야 국익에 도움이 될 지와 같은 것들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1930년대, 1940년때까지만 하더라도 지정학에서 가장 주의를 기울인 나라는 독일과 소련이었다. 소련은 넓은 땅과 자원을 차지한 국가이다. 다만, 활발한 해양 활동을 할 수 있는 항구가 없는 것이 큰 약점이다. 만약, 소련이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차지할 경우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국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독일 역시 자원, 기술력 그리고 발트해를 통해 해양 진출 등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소련만큼이나 위협적인 나라로 평가받았다.
소련 입장에서 지정학을 적용해보면, 널찍한 항구를 확보하는 것은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일이었다. 소련이 노릴 만한 지역은 이란, 튀르키예 등이었을 것이다. 한반도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졌다. 일본이 태평양으로의 진출로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과 미국이 가까워지면서 한반도의 중요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미국 입장에서 유라시아의 패권국이 누가 될 지는 별로 중요치 않은 문제였다. 아메리카는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둘러 쌓여있기 때문에 유라시아 대륙의 영향력이 미칠 위험이 낮았다. 그러나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이제는 유라시아에서 벌어지는 일이 미국에 더 빨리 그리고 더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유라시아에 패권국이 등장하면 패자의 칼 끝이 당장 아메리카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게 당시 지정학적인 분석이었다. 더구나 대륙의 지배자는 더 많은 영토, 인구, 자원을 바탕으로 미국보다 강한 힘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미국은 유라시아에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개입해서 패권국의 등장을 막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시점, 한반도는 소련 견제를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곳이었다.
한반도의 지리적인 면을 살펴보면 북으로는 중국,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동과 남은 태평양을 향해 열려있다. 동시에 일본을 향해있기도 하다.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는 중국과 소련에 육로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이며, 동시에 중국과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에는 중국을 견제한다는 목적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소련이 한반도를 차지할 경우에는 소련에게는 큰 동력이 될 수 있다. 우선, 한반도라는 부동항을 확보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노선이 일본에 둘러쌓여 있지만 만약 미국이 개입하지만 않는다면 힘의 논리에 의해 일본도 소련에 우호적이 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소련은 태평양을 자신들의 무대로 삼을 수 있다. 소련이 태평양까지 손에 쥔다면 미국조차도 소련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미국과 소련 양국에게 한반도는 중요한 위치가 아닐 수 없다.
패전을 앞둔 일본의 노림 수
한반도가 전략적 요충지라고는 하지만 1945년 광복 이전까지 한반도는 일본이 점령 중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개입한 것은 일본의 패전이 확실 시 되던 1945년 8월부터였다. 그런데 소련의 한반도 점령에는 일본의 전략이 한 몫을 했다. 일본은 1944년부터 이미 패전을 직감하고 있었고 지더라도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일본에게 최고의 전략은 한반도 분단이었다. 정확히는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를 나눠가지는 것이었다. 소련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손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련 견제를 위한 최전방 기지는 한반도가 될 것이고 미국의 무장은 한번도에 집중된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후방기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일본에게 조금 더 가혹한 전쟁배상금 등을 요구할 것이 확실했다. 이것이 일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한반도에서 소련과 미국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일본이 무장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고 싶어했다. 다시 말해, 미국이 일본에 군사력을 배치하고 일본의 국력을 일정 수준이상 유지시켜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일본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소련이 참전할 때까지 기다린다. 아마, 소련이 참전할 것이라는 첩보가 있었을 것이고 이를 기다리기 위해 항복 시점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했을 것이다. 소련이 참전하고 극동 지방에서 남하를 하자, 일본은 군대를 대부분 철수시키고 소련의 빠른 남하를 돕는다. 소련이 최대한 빨리 남하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1945년 8월 9일 소련이 한번도에 진출하자, 일본은 그제서야 재빨리 항복을 선언한다.
소련이 한번도에 먼저 들어오자, 다급해진 미국은 서둘러 한반도에 상륙한다. 그리고 양국은 38선을 기준으로 각각 남과 북을 통치하기로 합의한다. 이후, 남과 북은 각각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고 분단은 고착화된다. 불과 몇년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소련과 미국의 갈등은 더욱 고조된다. 한반도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본이 원했던 대로 미국은 일본에 군사를 배치하고 소련을 견제한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힘을 무한정 제한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군수품 수출로 일대 호황을 맞는다. 전쟁 특수로 일본의 경제는 되살아나고 이는 이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된다. 한반도 분단은 일본이 둔 신의 한 수였다. 일본이 유도를 했더라도 소련이 한반도를 점령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일본의 의지가 아니었더라도 소련이 한반도를 차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한반도 분단이라는 전략을 세우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애썼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24.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