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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삶,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거인의서재 2022. 12. 23. 20:57

    영생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영생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한다. 백년, 천년, 만년을 넘어서 무한히 사는 것이다. 무한한 삶을 산다고 했을 때 가장 의문이 드는 것은 우리의 기억이다. 영생을 산다면 기억력 역시도 무한해질 수 있겠지만 무한하다고 해서 모든 기억을 다 불러올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생을 살면 어떤 기억이 남을까. 만년을 산다고 하면 9990년 전,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기억과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생각날까? 아니면 5천년 전쯤 화산이 폭발했던 기억이 날까? 3천년 전에 커다란 전쟁이 났던 것이 기억에 남을까? 영생은 우리 삶의 밀도를 낮추는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우리가 불러올 수 있는 기억에 한계가 있다면 수명이 길어질 수록 기억 사이의 간격은 넓어지게 된다. 100년의 삶을 사는 우리도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기억에 공백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면 영생을 누리더라도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 된다. 기억하지 못하는 영원한 삶이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기억은 곧 삶을 지탱하는 토대이다. 무한히 넓어진 기억의 간격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 수명의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명의 한계는 곧 기억력의 한계와 같을 것이다. 삶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기억의 조각들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면 몸이 살아있더라도 정신은 움직이지 못할테니 말이다. 기억의 밀도가 삶을 하나의 스토리로 그려낼 수 있을 정도의 조밀함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 수명은 더 이상 확장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조금 더 확장해보면 인류의 지식이 어디까지 진보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도 도달하게 된다. 지식은 개인의 기억이 모여서 생기는 무언가라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지식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인간의 수명이 100년이라고 가정해보자. 인류는 끊임없이 지식을 쌓는다. 그리고 지식을 습득하는데는 일정한 시간이 들어간다. 과거에는 쌓인 지식이 많지 않아서 모든 지식을 배우는데 10년이 걸렸다면 현재에는 20년이 걸린다. 20년을 배워야 새로운 지식을 싹 틔울 수 있는 기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지식이 너무나 많이 늘어나서 지식을 배우는데 100년이 걸리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지식을 만들려면 100년 어치의 지식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이 생길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류 진보의 한계점이자 인류가 가진 수명의 한계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한성은 우리 삶을 더 빛나게 만드는 존재인 것 같다. 영생이라는 것이 무한한 축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것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을 수 있다. 흘러가는 이 시간을 붙잡는 것은 나의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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