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삶의 영역을 정한다
"중세는 한 단어로 품을 수 없는 시간임을 이해하고, 그런 시각이 어떤 근거에서 출발했는지 고찰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시간적으로 한 곳이 중세라고 해서 다른 곳이 반드시 중세일 필요 또한 없다."
-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2 (허진모 지음) -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세상을 정의한다라는 말은 익히 들어 익숙한 이야기 중 하나이다. 아마도 하이데거의 그림이론에서 나온 이야기였던 것 같다. 법치, 민주주의, 경제, 전쟁, 정치와 같은 단어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정의하는 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즉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서 세상을 다르게 해석하게 된다.
역사를 지칭하는 말들도 마찬가지이다. 역사를 상징하는 언어에 따라서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중세라는 단어는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되기까지의 1천년을 이르는 말이다. 유럽 혹은 서유럽의 역사 중 특정 시기를 지칭하기 위해 생긴 단어이다. 그리고 중세 유럽은 암흑의 시기로 불린다. 반면, 유럽 외의 나머지 지역은 동시대에 암흑기를 거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암흑의 시기가 전 지구를 천년간 거쳐간 것으로 착각을 하곤 한다. 이는 세계사라는 언어와 중세 시대라는 언어가 합쳐져서 생긴 오해일 것이다. 세계사는 세계의 역사이니 개념을 지칭하는 단어가 나오면 전 세계에 통용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일이 생긴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왜곡되는 순간이다.
중세라는 단어는 절대적인 구분이 아니라 후대에 의해 붙여진 이름 중 하나일 뿐이다. 중세도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현대였고 현재였다. 만약 우리가 중세 대신 '교회시대', '종교세대' 같은 새로운 말을 썼다면 지리적이고 시간적인 구분이 훨씬 더 명확했을 것이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와 같이 공간적인 의미를 함축하지 않은 단어를 쓰다보니, 같은 고대여도 중국의 고대와 유럽의 고대는 시기와 성격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것에 같은 말을 붙였기 때문에 혼란이 생긴다. 중세 유럽의 모습을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났던 모습으로 생각해버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언어는 우리의 삶과 사고의 영역을 결정한다. 그래서 언어를 주어지는 대로만 받아들이면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세상 속에 갇히는 것과 같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주어진 언어를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22.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