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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리고 정보비대칭 시장

거인의서재 2023. 1. 29. 21:47

    레몬(lemon)은 정보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실제로는 값어치가 없지만 가치가 높은 것처럼 포장된 상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고차 시장을 예로 들면, 차의 품질은 차를 판매하는 사람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구매자는 차의 품질을 판매자만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판매자는 낮은 품질의 차량을 정상 품질의 차량만큼 높은 가격에 판매할 유인을 가진다. 구매자는 품질을 정확히 알 길이 없으므로 구매를 포기하게 된다. 수요가 줄면 가격은 내려간다. 그리고 가격이 내려가면 정상 품질의 차량 판매자는 가격에 만족하지 못해서 차를 중고차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이내 중고차 시장에는 '레몬'만이 남는다. 이것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보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시장의 모습이다.

 

    정보비대칭성은 우리 삶 곳곳에 존재한다. 식당, 카페, 호텔, 구인구직 시장 모두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먹어보기 전까지는 음식의 맛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식당은 이점을 이용해 품질 낮은 음식을 제공할 유인을 가진다. 물론, 이는 이론상의 이야기이다. 현실에서는 거래가 여러번 반복되기도 하고 플랫폼 사업자들의 서비스 덕분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상당히 많이 감소한다. 카페나 호텔 등은 모두 리뷰와 블로그 후기와 같은 정보 덕분에 판매자가 일방적인 정보 우위를 갖는 상황이 많이 해소되었다. 이는 구직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잡플래닛, 블라인드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회사에 대한 정보를 구직자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비대칭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곳이 존재한다. 바로 '사람'과 관련된 곳이다. 먼저, 구인 시장을 생각해보자. 구직자는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수월해졌다. 그럼 반대로 기업은 개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더 쉬워졌을까? 기업은 채용을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요구하고 지원자들과 면접을 본다. 그러나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기업들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AI면접, 포트폴리오, 여러번에 걸친 면접, 장시간의 면접 등 다양한 방법들을 도입하기도 했다. 아마, 일부 기업은 예전보다 조금 더 많은 정보를 분명히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정보 요구는 지원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지원동기, 직무역량, 대인관계, 회사에 대한 애정은 지원자만 알고 있다. 기업들은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도 인사담당자들은 조직적응력과 역량을 판단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고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만남'이다. 친구, 직장 동료, 연인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쉽게 판별하기 어렵다. 특히나 짧은 만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짧은 만남에서는 상대를 속이는 것이 쉽다. 그리고 상대를 검증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학교나 직장처럼 오랜기간 동안의 만남을 지속하는 곳에서 관계를 맺기가 더 쉬운 이유이다. 오랜 시간이라는 조건이 주어지기 때문에 정보를 비대칭성이 해소될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들에게 생긴다. 그래서 짧은 만남만으로도 더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소개팅과 같은 형태로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소개팅이 정말 랜덤하게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라고 가정해보자. 만약, 짧은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을 속이려는 의지가 커질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을 속이기 시작하면, 본인의 가치를 속이지 않는 사람들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그래서 진실한 사람들은 선택되지 않기에 소개팅 시장에서 이탈하고 진실하지 않은 사람들만 남는다. 남아있던 사람들도 이를 눈치채고 시장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소개팅 시장은 붕괴한다. 정보비대칭성 이론을 적용해보면 이런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기술의 발달로 정보 비대칭성은 많이 감소했지만, 이는 여전히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분업화되고 개인화된 사회에 살아가면서 '사람'과 관련된 정보비대칭성은 더 늘어났는지도 모른다. 개인화가 곧 익명성의 강화와도 같은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 있는 나의 동료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사회는 비대칭성을 해소할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구직자에 대한 레퍼런스를 체크하는 것은 이런한 이유에서이다. 결혼정보회사가 존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는 아직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

 

 

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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