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 눈먼 자들의 도시 -

거인의서재 2023. 10. 25. 21:19

 

눈이 안보여

 

   운전석에 앉아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던 남자가 소리친다. 눈이 안보여. 갑작스레 눈이 멀어버린 남자. 이윽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 둘 시력을 잃는다. 그리고 세상은 곧 지옥이 된다.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지음)는 모든 사람들이 시력을 잃어버린 세상을 그린다. 오늘은 소설 속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 적어본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가 앞을 볼 수 있다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는 것은 아니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누군가 어려움에 빠질 것을 알면서도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하지 않고 애써 모른 척 외면하기도 한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지나치기도 하며, 쾌락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점을 쉽게 잊곤 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지 않는 것들이 때로는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져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우리가 보지 않는 것들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져있던 것들이 눈에 보이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게 만들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여전히 볼 수 없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훨씬 더 독자들의 눈에 잘 들어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사람들은 감춰져있던 행동들을 시작한다. 폭력을 휘두르고, 권력을 만들고, 욕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여전히 서로 돕고 의지하며 위로한다.

 

   이와 더불어, 본다는 것 혹은 남에게 보여진다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구속력을 지우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사라지자 수치심도 함께 빠져나갔다. 사람들은 방에서 복도에서 길거리에서 대소변을 본다. 수십명이 모여있는 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성관계를 갖는다. 서로를 보는 눈이 있던 세상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다. 도덕성 혹은 사회 규범은 사람 본성에서 우러나오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 의해서 강제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눈먼 세상에서 눈 뜬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눈 먼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 지 알 지 못한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을 뜬 사람은 모든 참상을 지켜보아야 한다. 보이기 때문에 무언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품지만 혼자 힘으로는 그럴 수가 없다. 그리고 보인다는 이유로 더 많은 의무를 지게 된다. 눈이 보이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실을 볼 수 있는 사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끔찍한 것들까지도 더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소수의 눈 뜬 사람들은 끔찍함을 볼 수 있을 뿐 감히 바꿀 수 없다. 때로는 자기에게 주어질 의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눈이 먼 사람인 척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볼 수 있지만, 나는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남들은 보지 못하지만, 나는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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