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타트업 이야기] (직무편) 나 전략팀인데..?
김신입 님, 영상 편집 가능하죠?
스타트업에서는 누구나 제너럴리스트가 된다. 담당자가 연차를 쓰거나 퇴사를 하면 다른 직무를 담당하는 누군가 이 자리를 메워야 한다. 때로는 신규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원래 업무와는 다른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규모가 작을 수록 이런 모습은 빈번해진다. 나는 당시 전략기획팀으로 입사를 했다. 사무실 인원은 50명이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전략팀과 스타트업의 전략팀은 달랐다. 많이 달랐다. 신 사업을 발굴하고 프로세스를 정립하거나 사내 컨설팅을 수행하는 것이 내가 꿈 꾼 전략팀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전략팀은 빈 자리가 생기면 언제든 채우는 부서였다. 나는 인턴이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더 많이 맡기도 했다. 다른 분들은 나보다는 조금 더 고정적이고 전략팀에 맞는 업무들을 맡고 있었다.
입사 후 처음 맡은 업무는 블로그 글쓰기였다. 제품 판매를 위해서 바이럴은 필수이다. 그래서 키워드별로 상위 노출될 수 있는 컨텐츠를 사내에서 직접 발행하기도 했는데, 내가 그 역할을 맡은 것이다. 블로그는 운영해본 적도 없는데 글을 쓰라고 하니 너무 하기 싫어서 계속 뒤로 미뤘던 기억이 난다. 당시 마케팅팀 인원이 부족해 누군가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스타 컨텐츠를 제작하고 올리는 일과 주요 카페들의 댓글을 관리하는 일도 함께 했었다. 인스타 계정도 없는 내가 포토샵으로 컨텐츠를 만들어서 올리다니 신기하면서도 하기 싫었다. 나는 전략팀인데 왜 이걸 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을 하며 일을 했던 기억이 난다. 템플릿이 모두 정해져있어서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몇 주간 맡았던 업무이다.
한 번은 페이스북 광고 컨텐츠를 직접 만든 적도 있다. 당시, 페이스북 및 인스타그램에 유료 광고를 했었는데 여기에 올릴 광고 소재를 나와 팀원들이 직접 만들었었다. 일반적으로는 마케터가 문구와 컨셉 정도를 정하고 디자이너가 이를 기반으로 광고 소재를 제작하는데, 당시에는 디자인 리소스가 부족했던 탓인지 제작까지 직접했다. 내 기억에 그때까지 사내 디자이너가 1명이었으니, 리소스가 부족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그림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소재를 만들어냈었다. 그리고 내가 만들었던 소재 중 하나가 실제로 송출이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한 디자인과 카피였던 것 같은데 팀장님께서 왜 송출을 해주신 건지 모르겠다. 컨텐츠가 다들 비슷했으니 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한번 해보신 건가 싶다
심지어 영상 편집을 한 적도 있다. 고객 인터뷰 영상을 편집하는 일이었는데 포토샵과 마찬가지로 영상 편집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1학년 때 윈도우 무비 메이커로 영상 만들기 과제를 해본 게 전부였다. 프로그램을 받고 자르기, 붙이기, 자막넣기 같은 필수 기능만 찾아 배워서 어찌어찌 완성을 했었다. 그때는 열심히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광고 소재처럼 퀄리티는 좋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쏟은 것 같은데 영상을 사용을 했던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결국 쓰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작은 사무실 안에는 심지어 CS팀도 있어서 전화 상담도 함께 하고 있었다. 이 팀도 마찬가지로 공석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지원을 한 적이 있다. 배송 문의 같은 가벼운 응대만 하기는 했는데 고객 콜을 직접 받아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것도 정말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다른 직무 경험을 했던 이야기만 적기는 했는데, 물론 전략팀만의 일도 있었다. 신제품 런칭이나 지표 분석 같은 일에도 참여했었다. 내가 느끼기에 전략팀의 일이 절반이었고 나머지 직무에 대한 일이 절반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준 곳이다. 정직원 분들도 비교적 직무 전환이 잦은 것 같았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말이다. 그것이 스타트업이 주는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 싶다. '나 전략팀인데..?' 하면서 했던 일들이 가끔씩은 생각이 난다.
2023.12.26.